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얼마 전 한 중견 제조기업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장 인근 하천에서 폐수 유출 의혹이 제기되자, 지역 언론이 즉시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해당 기업의 대표이사는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만 반복했고, 내부적으로 정리가 끝나면 공식 입장을 내겠다며 이틀을 침묵했습니다. 그 이틀 사이 SNS에서 불매운동 해시태그가 등장했고, 환경단체의 고발로 수사까지 착수되었습니다.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입니다.
이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기업 위기 보도의 68%가 최초 보도 후 24시간 이내에 프레이밍(보도 방향)이 고착됩니다. 첫 보도 시점에 기업이 어떤 메시지를 내느냐에 따라, 같은 사안이 "일시적 사고"로 끝날 수도, "구조적 비리"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업 위기를 언론 대응 관점에서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형에 따라 법적 리스크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언론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 수년간 기업 위기 대응 자문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위기 발생 후 72시간 이내의 언론 대응이 향후 소송 결과, 과징금 규모, 심지어 기업 존속 여부까지 좌우한다는 점입니다.
원칙 1 : 침묵은 전략이 아니라 위험입니다
"노코멘트"는 언론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단계라 하더라도, "현재 파악 중이며 확인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라는 최소한의 응답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법적으로도 합리적 시간 내 성실 대응의 노력은 추후 과실 판단에서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원칙 2 : 법률 검토 없는 공식 입장문은 독이 됩니다
홍보팀이 단독으로 작성한 보도자료가 법적 자인(자백에 준하는 인정)으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공식 입장문의 모든 문장은 반드시 법무팀 또는 외부 자문 변호사의 검토를 거쳐야 합니다. 특히 "유감" "사과" "인정" 등의 표현은 민사상 과실 인정, 형사상 자백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표현 수위를 법적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원칙 3 : 대변인은 한 사람으로 통일합니다
복수의 임직원이 각각 다른 내용을 언론에 전달하면, 진술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이는 수사기관에 "조직적 은폐 시도"로 해석될 수 있고, 추후 법정에서 신빙성을 크게 훼손합니다. 공식 대변인 1인을 지정하고, 나머지 임직원은 "공식 창구를 통해 안내드리겠습니다"라고만 응대하도록 내부 지침을 수립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IT 스타트업이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었습니다. CEO는 발빠르게 사과 영상을 올렸고, 여론은 비교적 빠르게 잠잠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과 영상에 담긴 표현이었습니다. "저희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이었습니다"라는 문장이 포함되었는데, 이 표현이 이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에서 "구조적 결함을 인지하고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추궁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언론 대응(PR)과 법적 대응(Legal)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 설계되어야 합니다.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실무에서 보면, 위기 대응에 성공한 기업과 실패한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사전 준비"에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제조기업 사례로 돌아가겠습니다. 이틀간의 침묵 후 해당 기업은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미 여론은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행정처분은 최고 수위로 결정되었고, 민사소송에서도 과실 비율이 크게 불리하게 산정되었습니다.
반면, 유사한 환경 사고를 겪은 다른 기업은 사고 발생 6시간 만에 법무팀 검토를 거친 1차 입장문을 배포하고, 24시간 내에 피해 지역 주민 설명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기업은 동일한 법 위반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제재를 받았습니다. 초기 대응의 성실성이 제재 수위 결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기업 위기 대응에서 언론 대응은 단순한 홍보 이슈가 아닙니다. 법적 리스크 관리의 핵심 영역이며, 기업의 존속과 경영진의 법적 책임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위기가 터진 뒤에 변호사를 찾는 기업이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위기 관리 역량은 평상시의 준비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