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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족·이혼·상속 상속채무·상속포기·한정승인
가족·이혼·상속 · 상속채무·상속포기·한정승인 2026.04.18 조회 3

상속포기 했는데 고인 예금을 인출했다면, 어떤 불이익이 생길까

손수혁 변호사
선우 법률사무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가까운 가족을 잃은 뒤, 상속포기를 결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고인이 남긴 채무가 재산보다 클 때 빚을 떠안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인데요, 문제는 상속포기 전후로 고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사용하거나 처분한 경우에 발생합니다. 장례비를 고인 통장에서 인출했을 뿐인데, 상속포기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당혹스러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실제 상담 현장에서 자주 접하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상속포기 후 상속재산 사용이 어떤 법적 불이익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례 1 - A씨(42세, 부산 거주 회사원)

A씨의 아버지가 지난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약 1억 2,000만 원의 카드빚과 대출채무가 있었고, 남긴 재산이라고는 예금 800만 원과 오래된 승용차 한 대뿐이었습니다. A씨는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했고, 법원으로부터 수리 결정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속포기 신고 전에 아버지 통장에서 장례비 명목으로 450만 원을 인출해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후 채권자가 A씨의 상속포기 무효를 주장하며 채무 이행을 청구했습니다.

사례 2 - B씨(37세, 대전 거주 자영업자)

B씨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B씨는 어머니 명의의 소형 아파트(시가 약 2억 원)와 금융 채무 3억 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B씨는 상속포기를 결정한 뒤 가정법원에 신고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신고 후 정리 과정에서 어머니 집에 있던 고가 가전제품과 귀금속 일부(약 350만 원 상당)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6개월 뒤 채권 추심 회사가 이 사실을 파악하고 B씨에게 법적 조치를 예고했습니다.

쟁점 1. 상속재산 처분이 상속포기를 무효로 만드는 이유

민법 제1026조 제1호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처분한 때"에는 단순승인(상속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법정단순승인이라고 합니다. 핵심은, 이 규정이 상속포기 신고 전뿐만 아니라 신고 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법정단순승인이 되면?

상속포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취급됩니다. 즉, 고인의 채무 전부를 상속인이 부담하게 됩니다. A씨 사례에서 채권자가 1억 2,000만 원 전액을 A씨에게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조항입니다.

여기서 '처분'이란 매도, 증여, 소비, 훼손 등 재산의 현상이나 성질을 변경하는 일체의 행위를 포함합니다. B씨처럼 고인의 물건을 자기 집으로 옮기는 것도 처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보관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외관이 형성되면 법원은 처분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쟁점 2. 장례비 인출은 정말 안 되는 걸까

A씨 사례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장례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일이고, 현실적으로 고인의 예금에서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판례의 태도를 살펴보면, 법원은 장례비 지출의 성격과 규모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1
사회 통념상 상당한 범위의 장례비는 상속재산의 처분으로 보지 않을 여지가 있습니다. 장례는 상속인의 의무적 성격이 강하고, 고인의 재산에서 지출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입니다.
2
다만 금액이 과도하거나, 장례비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는 처분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A씨의 450만 원이 순수 장례비용인지, 그 외 생활비 등이 포함되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3
영수증 등 증빙이 없으면 장례비 목적이었음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 상담을 해보면, 급박한 상황에서 영수증을 미처 챙기지 못해 불리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장례비 인출이 반드시 상속포기 무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한 방법은 가급적 상속인 본인의 자금으로 장례를 치른 뒤 비용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쟁점 3. 상속포기 무효 시 실제로 발생하는 불이익

상속포기가 법정단순승인으로 뒤집히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두 사례를 기준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A씨의 경우

상속포기가 무효가 되면 아버지의 채무 1억 2,000만 원을 그대로 상속받게 됩니다. A씨가 유일한 상속인이라면 전액 부담, 다른 상속인이 있다면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담하게 됩니다. A씨 본인의 급여, 예금, 부동산까지 강제집행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B씨의 경우

채무 3억 원에서 아파트 시가 2억 원을 제외하더라도 약 1억 원의 순채무를 부담할 위험이 있습니다. 나아가 채권자가 B씨의 물품 반출 행위를 근거로 사해행위취소(채권자의 권리를 해치는 행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까지 제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두 사례 모두, 상속포기라는 안전장치가 본인의 부주의한 행위 하나로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특히 상속포기 수리 결정을 이미 받았더라도, 채권자가 법정단순승인 사유를 소송으로 주장하면 법원이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실무적 조언 - 상속포기 전후로 지켜야 할 원칙

상담 현장에서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미리 알았더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원칙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1
고인의 재산에 절대 손대지 않기 - 예금 인출, 물건 반출, 보험금 수령, 카드 사용 등 어떤 형태든 고인 명의 재산을 사용하거나 처분하면 법정단순승인 위험이 발생합니다.
2
장례비는 상속인 본인 자금으로 - 장례 후 영수증을 모두 보관하고, 추후 상속재산에서 정산이 필요하면 법적 절차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3
상속포기 기간(상속 개시를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신속하게 신고 - 기간이 지나면 상속포기 자체가 불가능해지므로, 고인의 재산과 채무 현황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이미 재산을 사용했다면, 한정승인 전환 검토 - 상속포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상속받은 재산 범위 내에서만 채무를 변제하는 한정승인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 기간 제한과 요건이 있으므로 신속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5
고인의 우편물, 채무 독촉장도 주의 - 고인 앞으로 온 채무 독촉에 상속인이 직접 변제하거나 분할 상환을 약속하는 것도 단순승인으로 볼 수 있는 행위입니다.

상속포기는 제도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함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법적 판단까지 신경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상속포기를 결정하셨다면 그 전후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살피시길 당부드립니다.

손수혁
손수혁 변호사의 코멘트
선우 법률사무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상속포기 사건을 다루면서 보면, 법원의 수리 결정까지 받고도 사소한 재산 처분 행위로 포기가 무효 처리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장례비 인출이나 고인 물건 정리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행위가 법정단순승인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상속포기 전후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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