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드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지난 봄, 한 의뢰인이 깊은 한숨과 함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사기 피해를 입고 가해자를 고소했다가, 합의금을 받기로 하고 고소를 취하했는데, 약속한 돈이 들어오지 않자 다시 고소하려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변호사님, 한번 취하했는데 다시 고소할 수 있나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그분의 얼굴에는 후회와 불안이 짙게 묻어 있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이런 상황.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죄의 성격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갈립니다. 어떤 사건은 다시 고소가 가능하지만, 어떤 사건은 영원히 문이 닫힙니다. 한 번 도장을 찍기 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사항들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해당 범죄가 친고죄(고소가 있어야 처벌 가능한 죄)나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 불가)에 해당하는지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에 따라, 친고죄에서 고소를 취소하면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 반의사불벌죄도 1심 판결 선고 전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하면 동일하게 재고소가 불가능합니다.
사기, 횡령, 절도, 폭행치상 등 친고죄·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일반 범죄는 고소 취소 후에도 다시 고소가 가능합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런 범죄들은 애초에 고소가 처벌 요건이 아니므로, 취하한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반드시 사건을 종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분쟁이 합의서 해석입니다. "향후 일체의 민·형사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면, 추후 재고소 시 무고나 합의 위반으로 역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합의금이 분할 지급되는 경우라면, 전액 지급 완료를 조건으로 한 처벌불원임을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재고소가 법적으로 가능하더라도, 공소시효(범죄에 대한 처벌 가능 기간)가 지나면 의미가 없습니다. 사기죄는 10년, 단순폭행은 5년 등 죄목별로 시효가 다릅니다. 고소를 취하한 시점이 아니라 범죄 행위 시점부터 계산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CCTV는 삭제되고, 카카오톡 대화는 사라지며, 목격자의 기억은 흐려집니다. 재고소가 법적으로 가능해도 증거가 부족하면 무혐의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 고소 당시 확보했던 자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추가 확보가 필요한지 사전에 검토해야 합니다.
재고소 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고죄 역고소입니다. 합의금을 더 받아내려는 의도로 동일 사건을 반복 고소하는 것으로 비치면,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피해 사실이나 합의 불이행 등 명확한 사유가 있는지부터 정리해 두시기 바랍니다.
친고죄에서 재고소가 금지되는 것은 "동일한 범죄사실"에 한정됩니다. 같은 가해자가 동일한 피해자에게 별개의 시점에 새로운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새로운 사건이므로 고소가 가능합니다. 가령 명예훼손의 경우, 종전 고소 취하 이후 추가로 행해진 명예훼손 발언은 별개의 고소 대상입니다.
앞서 언급한 의뢰인의 사건은 다행히 사기죄였기에 재고소가 가능했고, 합의서에 "합의금 완납 시"라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어 무고죄 부담 없이 재고소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친고죄였거나 합의서에 조건 없는 처벌불원 의사가 담겨 있었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고소 취하는 도장 한 번에 끝나지만, 그 효력은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에 응하기 전, 그리고 취하서에 서명하기 전, 위 일곱 가지 항목을 차분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