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얼마 전 한 중견 소프트웨어 기업의 법무팀장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국 본사와 체결한 기술 라이선스 계약에서 로열티 정산 방식을 두고 분쟁이 생겼는데, 계약서에는 "뉴욕주 법원 관할"이라고 적혀 있고 별도 중재 조항은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아니면 뉴욕까지 가야 하는지, 설령 한국 법원에서 이기더라도 미국에서 집행이 가능한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호소였습니다.
국제 라이선스 분쟁에서 관할 문제는 본안 심리 이전에 승패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입니다. 어디서, 어떤 절차로 다투느냐에 따라 적용 법률, 입증 부담, 비용, 집행 가능성이 모두 달라집니다. 많은 기업이 이 절차를 복잡하게 느끼지만, 단계별로 분해하면 크게 다섯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라이선스 계약서에 포함된 분쟁해결 조항(Dispute Resolution Clause)을 꼼꼼히 읽는 것입니다. 이 조항에는 통상 세 가지 유형이 나타납니다.
(1) 특정 국가 법원의 전속적 관할 합의, (2) 국제중재기관을 통한 중재 합의, (3) 조정(mediation) 선행 후 중재 또는 소송으로 전환하는 다단계 조항. 실무에서는 이들 유형이 혼재되어 있거나, 의도치 않게 모순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국제사법 제8조에 따르면 당사자 간 전속적 관할 합의는 서면으로 이루어져야 유효합니다. 만약 계약서 말미에 "본 계약은 OO국 법원의 비전속적 관할에 따른다"고만 기재되어 있다면, 한국 법원에도 관할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관할이 어느 정도 윤곽을 잡히면,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은 준거법(Governing Law)입니다. 관할 법원과 준거법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법원이 관할권을 가지되 계약서상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되어 있다면, 한국 법원이 영국법을 적용해 심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국제 라이선스 계약에서는 지식재산권의 속지주의 원칙(해당 국가 등록 특허는 해당 국가법 적용)과 계약상 준거법이 충돌할 수 있으므로, 로열티 분쟁인지 특허 유효성 분쟁인지에 따라 전략이 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 많은 기업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라이선스 분쟁의 성격에 따라 지식재산권 등록국의 법원이 전속관할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특허 라이선스의 경우, 특허의 유효성이 쟁점으로 부상하면 등록국 법원만이 이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국제적 추세입니다.
계약서에 중재 조항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중재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중재 조항이 없거나 무효인 경우, 또는 중재 합의 범위 밖의 쟁점이 발생한 경우에는 법원 소송을 선택해야 합니다.
국제중재의 대표 기관으로는 ICC(국제상업회의소, 파리), SIAC(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 KCAB(대한상사중재원), HKIAC(홍콩국제중재센터) 등이 있습니다. 각 기관별로 관리비용, 중재인 선정 방식, 평균 심리 기간이 다르므로 분쟁 금액과 성격에 맞는 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중재를 선택한 경우, 해당 중재기관의 규칙에 따라 중재 신청서(Request for Arbitration)를 제출합니다. 신청서에는 분쟁의 개요, 청구 취지, 중재인 수(단독 또는 3인), 중재 장소, 중재 언어 등을 기재해야 합니다.
법원 소송의 경우, 한국 법원에 제기한다면 국제사법 제2조의 국제재판관할 규정에 기초하여 관할 적격성을 소장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관할 항변을 제기하면 본안 심리 전에 관할에 대한 별도 심리가 진행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6개월 이상 지연되기도 합니다.
증거 확보 측면에서는 로열티 정산 내역, 기술 이전 문서, 이메일 교신 기록, 제품 매출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국제 분쟁에서는 문서제출명령(discovery 또는 document production)의 범위가 관할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사전에 증거 확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중재판정(arbitral award)을 받은 경우,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이행하지 않으면 상대방 자산이 소재한 국가의 법원에 중재판정 승인 및 집행 신청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외국 중재판정을 집행하려면 중재법 제39조에 따라 서울중앙지방법원 등에 집행판결을 구하면 됩니다.
외국 법원 판결의 경우, 한국 민사소송법 제217조에서 정한 요건(관할의 적정성, 송달의 적법성, 공서양속 위반 여부, 상호보증 존재)을 모두 충족해야 승인 및 집행이 가능합니다. 특히 상호보증 요건은 국가마다 인정 여부가 달라 실무적으로 가장 큰 장벽이 됩니다.
전체 절차를 합산하면 짧게는 1년 6개월, 길게는 3년 이상 소요될 수 있습니다. 분쟁 초기 단계에서 관할과 준거법 전략을 정확히 설정하는 것이 전체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앞서 언급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사례로 돌아가면, 그 기업은 계약서상 "비전속적 관할"이라는 문구 덕분에 한국 법원에도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판결의 미국 내 집행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양 당사자가 합의하여 국제중재로 전환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분쟁 해결은 "어디서 이기느냐"가 아니라 "이긴 후 실제로 받아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관점에서 관할 전략을 세우는 것이 국제 라이선스 분쟁의 출발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