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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70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장을 남겼는데, 시가 6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장남에게 유증하되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매달 생활비 150만 원을 드리고, 함께 거주하며 돌보라"는 조건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은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받고 나서 석 달 만에 어머니를 혼자 남겨 두고 생활비 지급도 중단했습니다. 차남과 딸은 분통이 터졌지만, 이미 유언에 따라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라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부담부 유증(일정한 의무를 조건으로 하는 유증)의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하지 않으면 상속인들은 법원에 유증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111조가 바로 이 상황을 위해 마련된 조문입니다.
부담부 유증이란 유언자가 재산을 물려주면서 수증자(받는 사람)에게 일정한 법률상 의무를 함께 부과하는 유증 방식입니다. 민법 제1088조 제1항은 "유증에 부담을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 제2항에서 수증자는 유증받은 재산의 가액 범위 내에서 부담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부담부 유증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핵심은 수증자가 재산만 가져가고 의무를 버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유언자의 의사는 "재산을 줄 테니, 이것만은 해 달라"는 것이고, 법은 그 의사를 존중합니다.
민법 제1111조는 "부담 있는 유증을 받은 자가 그 부담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속인 또는 유언집행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촉구)할 수 있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법원에 유증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절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단계: 이행 최고 - 상속인 또는 유언집행자가 수증자에게 상당한 기간(통상 2주~1개월)을 정하여 부담 이행을 서면으로 촉구합니다. 내용증명 우편을 활용하는 것이 증거 확보에 유리합니다.
2단계: 기간 도과 확인 - 정해진 기간 내에 수증자가 부담을 이행하지 않으면, 취소 청구의 요건이 충족됩니다.
3단계: 법원에 유증 취소 청구 - 가정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유증의 취소를 구합니다. 법원이 취소를 인용하면 유증의 효력이 소급적으로 소멸하고, 유증 재산은 상속재산으로 복귀합니다.
앞서 소개한 사연에 적용하면, 차남과 딸은 상속인 자격으로 장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1개월 내에 어머니 부양 의무를 이행하라"고 최고한 뒤, 이행이 없으면 법원에 유증 취소의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부담 이행의 정도가 불충분한 경우에도 취소 청구가 가능한지 문제됩니다. 예컨대 생활비 150만 원 중 50만 원만 보내고 동거 의무는 지키지 않는 상황입니다. 판례의 태도를 종합하면, 부담의 본질적 부분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취소 청구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사소한 부분의 미이행만으로는 취소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류분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부담부 유증으로 다른 상속인의 유류분이 침해되었다면, 유증 취소와 별도로 유류분 반환 청구도 가능합니다. 다만 두 제도의 목적과 효과가 다르므로, 어떤 방법이 유리한지는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증자가 부담 이행 불능에 빠진 경우도 있습니다. 수증자가 경제적으로 곤궁해져 도저히 이행할 수 없게 된 경우, 이행 최고를 거쳐 취소 청구가 가능한 것은 동일합니다. 수증자의 귀책 여부가 취소 가부를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첫째, 유언의 방식이 적법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민법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5가지 유언 방식만 인정합니다. 형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언은 무효이므로, 부담부 유증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둘째, 부담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잘 돌봐 달라" 정도의 추상적 표현은 부담의 범위를 놓고 분쟁이 될 수 있습니다. 금액, 기간, 방법 등이 명확할수록 이행 여부 판단이 수월합니다.
셋째, 이행 최고는 반드시 서면으로 해야 합니다. 구두 최고도 법적으로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최고를 받은 적 없다"고 다투는 경우가 많으므로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하고 사본과 발송 기록을 보관해야 합니다.
넷째, 시효에 주의해야 합니다. 부담부 유증 취소 청구권은 형성권으로서, 유증의 효력이 발생한 후(유언자 사망 시) 부담 불이행 사실을 안 때부터 합리적 기간 내에 행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장기간 방치하면 권리 행사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