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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 영업비밀·NDA·경업금지(거래·협력) 2026.08.23 조회 56

역설계로 영업비밀 침해? 정당한 리버스엔지니어링의 경계

김범수 변호사
법무법인 대청 · 경기도 수원시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역설계(리버스엔지니어링, 완성된 제품을 분해·분석해 그 기술이나 구성을 알아내는 것) 자체는 원칙적으로 합법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붙습니다. 이 경계를 잘못 이해하면 정당한 연구개발이 하루아침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번집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우린 시중에 파는 제품을 뜯어봤을 뿐인데 왜 문제가 되냐'며 억울해하는 기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역설계는 왜 원칙적으로 합법인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을 '부정한 수단'으로 취득·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핵심은 '부정한 수단'입니다.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제품을 정당하게 구매한 뒤 이를 분해·분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는 부정한 수단이 아닙니다. 시장에 공개된 물건을 뜯어보고 원리를 파악하는 것은 기술 발전의 정상적 과정으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일본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가 역설계를 정당한 기술 취득 방법으로 인정합니다. 우리 법 해석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침해가 될까 — 세 가지 함정

문제는 '어떻게 그 제품과 정보를 손에 넣었는가'입니다. 합법적 역설계와 위법한 침해를 가르는 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정당한 취득 여부 — 정상 구매한 제품이 아니라, 절취·기망·계약 위반 등으로 얻은 물건을 분석했다면 그 자체가 부정 취득입니다.
2계약상 역설계 금지 조항 — 소프트웨어 라이선스나 NDA(비밀유지계약)에 '역설계 금지' 특약이 있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3내부 정보의 결합 — 순수한 분석 결과가 아니라, 퇴사자가 가져온 설계도나 공정 노하우가 섞여 있으면 침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제품 자체는 시중에서 살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공정 조건, 배합 비율, 소스코드 같은 것은 단순 분해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정보가 외부에서 유입됐다면 '역설계'라는 명분은 무너집니다.

계약으로 역설계를 막을 수 있는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실무의 핵심입니다.

법이 역설계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더라도, 당사자 간 계약으로 이를 제한하는 것은 유효합니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이 라이선스 계약, 공급계약, 협력계약에 'no reverse engineering'(역설계 금지) 조항을 명시합니다.

이런 조항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 제품을 뜯어 분석했다면, 영업비밀 침해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집니다. 경우에 따라 위약벌 조항까지 걸려 있으면 배상 규모가 커집니다.

다만 계약상 금지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상호주의·기간 제한 없이 일방적일 경우, 그 유효성이 다투어질 여지도 있습니다. 조항 문구 하나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침해 판단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것

역설계를 둘러싼 분쟁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대개 '입증'입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업비밀을 주장하는 쪽은 세 가지를 입증해야 합니다. 첫째, 해당 정보가 비공지성(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을 갖췄는지. 둘째, 비밀로 관리했는지(비밀관리성). 셋째, 독립적 경제 가치가 있는지입니다.

여기서 핵심 반론이 나옵니다. 상대방이 '단순 역설계만으로 그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면, 그 정보는 사실상 공지된 것에 가까워 비밀성이 약해집니다. 반대로 '역설계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라면, 그것이 외부에서 유입됐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황이 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개발 과정의 로그, 실험 노트, 소스 이력, 관련자 진술을 통해 '우리는 순수하게 자체 분석으로 도달했다'는 개발 독립성을 입증하는 작업이 결정적입니다.

기업이 지금 점검해야 할 것

정리하겠습니다. 역설계를 하는 입장이든, 당하는 입장이든 준비가 필요합니다.

역설계를 통한 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이라면, 분석 대상 제품을 정당하게 취득한 증빙을 남기고, 개발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독립 개발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약서에 역설계 금지 조항이 있는지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자사 기술을 보호하려는 기업이라면, 제품에 담긴 핵심 정보가 단순 분해로 노출되지 않도록 설계하고, 거래·협력 계약에 역설계 금지와 비밀유지 조항을 명확히 넣어야 합니다.

역설계는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모호한 대표적 영역입니다. 경계선이 문서와 기록으로 결정되는 만큼, 분쟁 이전 단계의 관리가 승부를 가른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김범수
김범수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대청 · 경기도 수원시
이 분야를 다루면서 느낀 점은, 역설계 분쟁의 승패가 결국 '개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는가'에서 갈린다는 것입니다. 계약서의 역설계 금지 조항 하나가 결과를 뒤집는 경우도 많으니, 신제품 출시 전이나 협력계약 체결 전에 전문가의 검토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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