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거래처와 오랜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공급 계약서에 독점 조항과 최소 구매 수량을 넣자는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우리끼리만 거래하자", "매달 이 정도는 사주겠다"는 약속을 문서로 남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두 조항은 서로 맞물려 있어서, 처음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실제 있을 법한 사례를 통해 독점 조항과 최소 구매 수량 설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차분히 짚어보겠습니다.
[사례] 경기 화성에서 화장품 원료를 제조하는 A사(대표 42세)는, 서울에서 색조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B사(대표 37세)와 3년짜리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B사는 "우리에게만 독점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고, A사는 그 대신 월 최소 5,000만 원어치 구매를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계약 1년 뒤 B사 매출이 급감하면서, B사는 월 2,000만 원 정도만 주문했습니다. A사는 남은 물량에 대한 대금을 청구하고 싶은데, 정작 다른 거래처에는 팔지 못하고 있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생각보다 흔합니다. 두 조항이 서로를 옭아매면서 양쪽 모두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독점 조항이라고 하면 흔히 "B사에게만 판다"는 의미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독점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공급자 독점(A사가 B사에게만 공급)인지, 구매자 독점(B사가 A사에게서만 구매)인지, 아니면 양방향인지를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합니다.
위 사례에서 A사는 "B사에게만 공급한다"는 의무를 졌습니다. 즉 물량이 남아도 다른 색조 브랜드에 팔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반면 B사가 "A사에게서만 산다"는 구매자 독점 의무를 함께 졌는지는 계약서 문언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B사의 구매 독점 의무가 빠져 있다면, B사는 다른 원료사에서 값싸게 사면서 A사의 재고만 묶어두는 결과가 됩니다.
독점 조항을 넣을 때는 "판매 대상 지역", "제품 범위", "독점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합니다. 특히 "경쟁 제품"의 정의가 모호하면, 훗날 어디까지가 위반인지를 두고 다툼이 생깁니다.
또한 독점 조항은 자칫 공정거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거래상 지위가 우월한 쪽이 상대에게 배타조건부 거래(다른 사업자와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를 강요하면, 상황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규모가 크거나 시장 영향력이 있는 거래라면 이 부분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최소 구매 수량은 넣었는데, 정작 미달 시 효과는 정하지 않는 실수를 하십니다. A사와 B사도 "월 5,000만 원"이라는 숫자만 있고, 못 채웠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계약서에 없었습니다.
이 경우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갈립니다. 첫째, 최소 구매 수량을 확정적 구매 의무로 본다면, B사는 실제 주문 여부와 관계없이 5,000만 원어치 대금을 지급할 채무를 부담합니다. 둘째, 이를 단순한 노력 목표로 본다면, 미달해도 대금 청구는 어렵고 계약 해지 사유 정도로만 작용합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계약서에 명시가 없으면 결국 문언 전체의 취지와 거래 관행, 협상 경위를 종합해 판단하게 됩니다. 그만큼 다툼의 여지가 커지는 것이지요.
실무에서는 미달 시 부족분 정산 방식(못 채운 만큼의 일정 비율을 위약금으로 지급), 독점 해제(미달하면 A사가 다른 곳에도 팔 수 있음), 단가 조정 중 하나를 미리 정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A사가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은, 물량은 안 팔리는데 독점 때문에 다른 곳에도 못 판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점과 최소 구매를 연동시키지 않아 생긴 문제입니다.
가장 흔한 해법은 "B사가 최소 구매 수량을 채우지 못하면, A사의 독점 공급 의무가 자동으로 해제된다"는 조항을 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B사는 독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 물량을 지키려 하고, A사는 물량이 남을 때 손해를 만회할 길이 생깁니다. 서로에게 공평한 안전장치인 셈이지요.
여기에 더해 사정 변경에 대한 대비도 중요합니다. 위 사례처럼 경기 침체나 예상 밖의 매출 급감이 올 수 있으므로, 일정 기간 협의를 통해 최소 수량을 재조정할 수 있는 조항을 두면 극단적인 분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독점 조항과 최소 구매 수량은 반드시 세트로 설계해야 합니다. 독점의 대가로 최소 구매를 걸었다면, 최소 구매가 무너졌을 때 독점도 함께 풀리도록 하는 것이 가장 균형 잡힌 방식입니다.
계약서를 작성하실 때는 "좋은 관계니까 대충 넣자"는 마음보다, "관계가 나빠졌을 때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힐까"를 상상하며 문언을 다듬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서로를 위한 조항일수록 더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것이 오히려 오래가는 신뢰의 바탕이 됩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