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수도권에서 20년 넘게 중소형 가전 부품을 유통해 온 B씨(54세)는 어느 날 갑자기 거래가 끊겼습니다. 그가 취급하던 핵심 부품을 사실상 혼자 공급하던 제조업체 A사가,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앞으로 귀사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메일 한 통을 보내온 것입니다.
B씨는 처음에는 단순한 거래 분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A사가 같은 지역의 경쟁 유통업체에는 계속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문제로 번지게 됩니다. 오늘은 B씨의 사례를 통해,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의 거래거절이 어떤 법적 쟁점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성립하려면, 가장 먼저 A사가 법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관련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장에서 A사가 가진 점유율입니다.
관련 시장(경쟁이 이루어지는 상품·지역의 범위)을 좁게 잡으면 A사의 지배력이 커 보이고, 넓게 잡으면 작아 보입니다. B씨 사건에서 해당 부품은 규격이 특수해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기 어려웠고, 국내에서 이를 생산하는 업체가 사실상 A사 한 곳뿐이었습니다. 이 경우 관련 시장은 '해당 규격 부품의 국내 공급시장'으로 좁게 획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입장벽,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대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B씨 사건에서는 특수 규격이라는 진입장벽과 대체 불가능성이 A사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요소였습니다.
A사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라고 인정되더라도, 거래를 거절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위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자에게는 거래상대방을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거절이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입니다.
실무에서 거래거절의 부당성을 판단할 때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봅니다.
B씨 사건이 문제가 된 결정적 이유는, A사가 같은 조건의 경쟁 유통업체에는 계속 공급하면서 유독 B씨와의 거래만 끊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B씨는 대금을 연체한 사실도, 계약을 위반한 사실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합리적 사유 없이 특정 사업자만 배제하는 거래거절은 경쟁제한 의도가 추정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A사가 "B씨가 수차례 대금을 연체했고, 품질 클레임을 임의로 전가했다"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한다면, 거래거절은 정당한 경영판단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쟁점은 양측이 제시하는 자료의 무게 싸움으로 귀결됩니다.
B씨처럼 시장지배력 남용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첫째는 공정거래위원회 신고입니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 남용행위가 인정되면 시정명령과 과징금(위반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금전적 제재)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신고 자체에 비용이 들지 않고, 공적 기관이 조사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개인 사업자에게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공정위의 처분은 B씨에게 직접 손해를 배상해 주는 것이 아니라, 위법행위를 바로잡고 제재하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둘째는 민사 손해배상 청구입니다. 거래거절로 인해 B씨가 입은 매출 감소, 폐업으로 인한 손실 등을 직접 청구하는 방법입니다. 공정위의 위법 판단이 선행되면 민사소송에서 입증 부담이 한결 가벼워지므로, 실무에서는 공정위 신고와 손해배상 청구를 단계적으로 병행하는 전략을 많이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증거의 확보입니다. B씨가 거래거절 직전까지 정상적으로 거래해 온 발주서와 세금계산서, 거절 통보 메일, 그리고 경쟁업체에는 공급이 계속되고 있다는 정황 자료를 미리 정리해 둔 덕분에 사건의 방향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시장지배력 남용 사건은 결국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없었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에 승패가 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