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오근 변호사 입니다.
"저는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퇴직금도 못 받고 나와야 하나요?" 이런 고민을 안고 계시는 보험설계사나 방문판매원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위촉계약, 업무위탁계약 등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회사의 지시 아래 일해 온 분들이 퇴직금, 연차수당은 물론 4대 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가상의 두 사례를 통해, 보험설계사와 방문판매원의 근로자성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되는지 꼼꼼히 살펴보겠습니다.
A씨는 2018년부터 6년간 K생명보험 부산지점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했습니다. 계약서에는 '위촉 모집인'이라 적혀 있었지만, 매일 오전 8시 30분까지 지점에 출근해야 했고, 주 3회 이상 회의 참석이 의무였습니다. 상품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지점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고, 결국 실적 부진을 이유로 위촉이 해지되었습니다. A씨의 월 평균 수입은 약 280만 원이었습니다.
B씨는 2020년부터 3년간 H건강식품 대전영업소에서 방문판매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계약 형태는 '개인사업자 위탁계약'이었으나, 회사가 지정한 유니폼을 입고 회사 차량을 사용했으며, 매일 활동일지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수당은 판매 수수료 외에 월 고정급 120만 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두 분 모두 "나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퇴직금과 해고 관련 보호를 받지 못할 위기에 놓이셨습니다. 걱정이 크셨을 겁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서의 이름이 아니라 실질적인 근로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이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판례 취지 요약
즉, 계약서에 '위촉',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더라도, 실제 일하는 방식이 근로자와 다름없다면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A씨처럼 '위촉 모집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도 포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법원이 보험설계사·방문판매원의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살펴보는 구체적인 요소들이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중요하니 꼼꼼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는 패턴은, 위 요소 중 3~4가지 이상이 충족되면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방향으로 판단이 기우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다만 하나의 요소만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A씨(보험설계사)의 경우
A씨는 출퇴근 시간 구속, 정기 회의 참석 의무, 업무지시, 실적 미달 시 제재 등 사용종속관계를 보여주는 요소가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수입 구조가 순수 수수료 기반이었다는 점은 근로자성을 약화시키는 요소입니다. 그래도 대법원은 이전 사안에서 "보수의 성격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시한 바 있어, A씨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B씨(방문판매원)의 경우
B씨는 고정급 존재, 회사 장비 사용, 유니폼 착용, 활동일지 의무 제출, 업무 대체 불가 등 거의 모든 판단 요소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 방향입니다. 특히 월 120만 원의 고정급은 근로 제공 자체에 대한 대가, 즉 임금으로 볼 수 있는 강력한 근거입니다.
만약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두 분 모두 다음과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보험설계사나 방문판매원 분들이 근로자성을 주장하시려면, 결국 "나는 회사의 지시를 받으며 종속적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막막하게 느껴지실 수 있지만, 생각보다 일상에서 쌓이는 자료가 많습니다.
이러한 자료를 미리 확보해 두시는 것이 분쟁 발생 시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특히 계약이 해지된 후에는 회사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재직 중에 자료를 정리해 두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근로자성 판단은 개별 사안마다 구체적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에 위 기준을 대입해 보시고 해당 요소가 얼마나 충족되는지 점검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한 일의 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차분하게 하나씩 준비해 나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