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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 국제거래·국제중재·판결집행 2026.04.28 조회 30

CISG 적용 배제 조항 없이 계약했다가 분쟁이 생긴다면

이희태 변호사
법무법인 엘리트로 · 경기도 평택시

오늘은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의 적용 배제 조항을 명시하지 않았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가상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CISG는 국제 물품매매 분야에서 가장 널리 적용되는 국제 조약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9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이 협약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례 개요: A사와 B사의 섬유원단 공급 분쟁

A사 : 서울 소재 섬유원단 수출업체 (대표 김모씨, 48세)

B사 : 독일 뮌헨 소재 의류 제조업체 (대표 Thomas H., 55세)

계약 내용 : A사가 B사에 폴리에스터 혼방 원단 120톤을 납품하는 계약, 총 대금 약 86만 유로

준거법 조항 : "This Agreement shall be governed by the laws of the Republic of Korea."

CISG 배제 조항 : 없음

A사는 계약에 따라 원단을 선적하였으나, B사는 입고 후 원단 일부(약 35톤 분량)에서 색상 편차가 허용 범위를 벗어난다며 대금 전액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A사는 납품 규격 내의 정상 범위라고 주장했고, 양측의 분쟁은 서울 국제중재원에 회부되었습니다.

중재 과정에서 B사 측 대리인은 한 가지 핵심적인 주장을 제기합니다. 바로 이 계약에는 CISG가 자동 적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쟁점 1: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정했는데도 CISG가 적용되는가

첫째, CISG 제1조 제1항 (a)호의 구조를 이해해야 합니다. CISG는 영업소가 서로 다른 체약국에 있는 당사자 간의 물품매매계약에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한국과 독일 모두 CISG 체약국이므로, 별도의 배제 합의가 없는 한 이 협약이 우선 적용되는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계약서에 "준거법은 대한민국법으로 한다"라고만 기재한 경우, CISG는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조약으로서 대한민국법의 일부이므로 오히려 CISG 적용의 근거가 됩니다. 이것은 실무에서 매우 흔히 발생하는 오해입니다.

둘째, CISG 제6조는 당사자가 협약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개별 조항의 효력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이 '배제'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제 중재 실무에서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한 것만으로는 CISG를 배제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다수의 입장입니다.

결국 A사와 B사의 계약에는 CISG가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A사가 당초 한국 민법과 상법을 기준으로 준비했던 법적 논거는 상당 부분 재구성이 필요했습니다.

쟁점 2: CISG 적용 시 물품의 하자 통지 의무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 사건에서 CISG 적용 여부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이유는 하자 통지 기한 규정의 차이 때문입니다.

한국 상법 제69조에 따르면 매수인은 물품을 수령한 후 지체 없이(통상 수령 즉시 또는 며칠 이내) 하자를 통지해야 하고, 이를 해태하면 하자에 기한 권리를 상실합니다. 반면 CISG 제39조 제1항은 매수인이 부적합을 발견하였거나 발견하였어야 하는 때로부터 합리적인 기간 내에 통지하면 된다고 규정하며, 제39조 제2항에서 인도일로부터 최장 2년의 기한을 부여합니다.

한국 상법 vs CISG 통지 기한 비교

한국 상법 : 수령 즉시 검사 후 지체 없이 통지 (실무상 수일~수주)

CISG 제39조 : 합리적 기간 내 통지, 최장 인도일로부터 2년

B사는 원단 입고 후 약 47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하자를 통지했습니다. 한국 상법 기준에서는 지체 없는 통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었으나, CISG 기준에서는 대규모 섬유원단의 전수 검사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기간 내로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 차이 하나만으로 분쟁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CISG 적용 배제 조항의 부재가 A사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쟁점 3: CISG 적용 배제 조항은 어떻게 작성해야 유효한가

셋째, 실무에서 CISG를 배제하려면 어떤 조항을 두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명시적으로 삽입하는 것입니다.

CISG 배제 조항 예시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CISG) shall not apply to this Agreement."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은 본 계약에 적용되지 아니한다.)

이 문구는 반드시 준거법 조항과 함께 기재되어야 합니다. 실무에서 권장되는 형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This Agreement shall be governed by and construed in accordance with the laws of the Republic of Korea, excluding the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CISG)."

단순히 "한국 민법에 따른다"라고 기재하는 것만으로도 CISG 배제 의사를 추론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중재판정부나 법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성이 남습니다. 따라서 CISG를 적용하고 싶지 않다면 명문으로 배제하는 것이 유일하게 안전한 방법입니다.

반대로, CISG 적용을 의도적으로 원하는 경우에도 그 취지를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CISG가 규율하지 않는 영역(이자율, 소멸시효 등)에 대해서는 보충적으로 적용될 국내법을 함께 지정해 두어야 계약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례 분석의 실무적 시사점

이 사례에서 도출할 수 있는 실무적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계약 체결 전 CISG 적용 가능성 검토

상대방 영업소 소재국이 CISG 체약국인지 확인하는 것이 국제거래 계약 검토의 출발점입니다. 2024년 기준 95개국 이상이 체약국이므로, 대부분의 국제 물품매매에서 CISG 적용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2. 배제 또는 수용의 의도를 명문화

CISG를 적용할 것인지 배제할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계약서 준거법 조항에 명확히 반영해야 합니다. 침묵은 적용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3. 하자 통지, 면책 사유, 손해배상 범위의 차이 파악

CISG는 한국 민상법과 다른 규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자 통지 기한, 계약 해제(avoidance) 요건, 본질적 계약 위반(fundamental breach)의 개념, 손해 경감 의무(mitigation) 등은 국내법과 상이하므로, 자사에 유리한 규범이 무엇인지 사전에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중재 조항과의 연계

국제중재에서는 준거법 판단이 분쟁 초기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CISG 적용 여부가 불명확하면 중재 비용과 기간이 추가로 소요되므로, 계약 단계에서 분쟁 해결 조항과 준거법 조항을 일관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CISG 적용 배제 명시 조항은 단순한 형식적 문구가 아니라, 분쟁 발생 시 적용될 법규범 전체를 결정짓는 핵심 장치입니다. 계약서 한 줄의 유무가 수억 원의 결과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희태
이희태 변호사의 코멘트
법무법인 엘리트로 · 경기도 평택시
국제 물품매매 분쟁을 다루면서 보면, CISG 적용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특히 준거법을 한국법으로 정했으니 안심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CISG가 배제되지 않습니다.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국제거래 전문가의 검토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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