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얼마 전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서 6개월 넘게 매일 출퇴근하며 도배와 마감 작업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현장에서 잘려났다고 합니다. 퇴직금은커녕 밀린 공사대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원청 업체는 "당신은 도급 사업자이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건설 현장에서 매우 흔합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 가운데 1인 도급 형태로 일하는 인원은 약 1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계약서상으로는 도급이지만, 실제 일하는 모습은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이 사이에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계약서의 명칭만으로 근로자인지 사업자인지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근로 제공 관계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이 정의에서 핵심은 계약서의 제목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노무를 제공했느냐에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패턴이 있습니다. 원청 업체가 1인 기술자에게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받고, 계약서에는 "도급"이라고 적어둡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작업 순서도 원청 현장소장이 지시하며, 다른 일을 할 자유도 없습니다. 이런 경우 법원은 높은 확률로 근로자성을 인정합니다.
대법원이 축적해 온 판례를 종합하면, 1인 도급 현장에서의 근로자성은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하나의 요소만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건설업은 다른 업종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 근로자성 판단이 더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 건설 현장은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짧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법원도 이 점을 고려하여, 계약 기간이 짧다는 사실만으로 도급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둘째, 건설 기술자들은 여러 현장을 옮겨 다니는 것이 보통인데, 특정 기간 동안 한 현장에만 전속되어 있었다면 이는 근로자성을 뒷받침하는 요소가 됩니다.
셋째, 건설산업기본법상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여, 누가 실질적 사용자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실제로 지시와 감독을 행사한 주체가 사용자로 인정됩니다.
1인 도급 형태로 일하던 사람이 근로자로 인정받게 되면, 법적으로 상당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분쟁을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근로자성을 주장하려면 일하던 당시의 기록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출퇴근 기록입니다. 현장 출입 카드 기록, 출근부 사본, 또는 매일 현장에 도착하며 찍은 사진이나 위치 정보도 증거가 됩니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현장소장에게 "내일 몇 시에 나오라"는 지시를 받은 내용이 있다면 반드시 보관해야 합니다.
작업 지시서, 회의록, 안전교육 참석 기록 등도 사용종속관계를 입증하는 데 유용합니다. 보수가 월 단위 또는 일당으로 지급되었음을 보여주는 계좌 이체 내역도 핵심 증거입니다.
사업자등록증이 있다는 이유로 근로자성 주장을 포기하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그러나 법원은 사업자등록 여부를 형식적 요소로만 참고할 뿐, 이것이 실질적 판단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과 하급심은 1인 도급 근로자성 인정 범위를 점차 넓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건설 현장뿐 아니라 IT 프리랜서, 배달 기사, 학습지 교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형식은 도급이나 실질은 근로"라는 판단이 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도 건설 일용근로자 보호를 위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건설 현장 불법 하도급 집중 점검을 확대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1인 도급 형태로 일하는 분들의 법적 지위가 점차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근로자성 인정은 개별 사안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같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원청의 지시 정도, 보수 지급 방식, 전속성 등이 다르면 결론이 정반대로 나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법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