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2024년 기준 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명예훼손 관련 고소 건수는 연간 약 9만 건에 달합니다. 그중 상당 비율이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고소를 당하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합니다. 한국 형법은 허위사실 적시뿐 아니라, 진실한 사실을 공연히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체계는 동시에 진실 공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위법하지 않다는 조각사유(위법성이 배제되는 사유)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른바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 규정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보호 사이에서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지, 그 기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핵심 구성요건을 분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실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허위사실 적시(제307조 제2항)는 5년 이하의 징역 등 가중처벌을 받을 뿐, 진실한 사실 적시도 그 자체로 범죄 구성요건을 충족합니다.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판례가 확립한 구체적 판단 기준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요건 1 | 적시된 사실이 진실일 것
적시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해야 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중요한 부분에서 진실에 합치'되면 족하다는 입장입니다. 완벽한 정확성까지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요건 2 |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것
여기서 '공공의 이익'은 넓게 해석됩니다. 국가적, 사회적,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뿐 아니라, 특정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피해를 알리는 행위, 공직자의 비위를 고발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입니다.
요건 3 | 행위자의 주요 동기가 공익 목적일 것
'오로지 공공의 이익'이라는 문언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공익 목적이 '주된 동기'이면 족하고 부수적으로 사적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위법성 조각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공적 가장(假裝) 아래 실질적으로 개인에 대한 보복이나 비방이 주된 목적이라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부분은 '공공의 이익' 해당 여부입니다. 대법원 판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됩니다.
형법 제310조는 '진실한 사실'을 요건으로 하므로, 적시 내용이 결과적으로 허위였다면 원칙적으로 이 조항에 의한 위법성 조각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판례는 이에 대한 보완 법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행위자가 적시한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 비록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더라도 범의(고의)가 부정되거나 위법성 인식의 착오로서 책임이 조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려면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신뢰할 만한 자료에 기반했는지, 사실 확인을 위한 합리적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공식 문서, 공공기관 발표, 복수의 독립적 정보원 등을 통해 확인한 경우라면 상당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상황에서 형법 제310조를 주장하려는 경우, 실무적으로 다음 사항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입증 부담의 배분입니다. 위법성 조각사유는 피고인 측이 주장하고, 그 주장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다만 검찰도 공익성 부정에 관한 입증 활동을 하게 되므로, 결국 양측 주장과 증거를 종합하여 법원이 판단합니다.
둘째, 증거 확보 시점이 중요합니다. 사실을 적시하기 전에 그 내용이 진실임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확보해 두었는지가 핵심입니다. 적시 이후에 수집한 증거만으로는 '상당한 이유' 주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표현의 방식과 범위를 사전에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알렸는지에 따라 공익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반복적으로 게시하거나, 상대방의 실명과 신상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노출하는 방식은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진실을 말할 자유는 민주사회의 근간이지만, 그 자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 규정은 그 경계를 설정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공적 관심사에 관한 진실한 사실의 공표는 보호받을 수 있으나, 개인에 대한 보복이나 사적 감정이 주된 동기라면 같은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표현의 목적과 방법 모두에서 공익성을 갖추었는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