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
지난 봄, 경기 화성에서 물류창고 신축공사를 맡고 있던 한 중소 건설사 대표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자재 단가 폭등과 인력 수급 차질로 공정률이 계약 대비 30% 가까이 밀렸는데, 발주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사를 멈추지 말고 계속 진행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공사를 강행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단 중단하고 협상해야 하는지 그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장면입니다. 공정 지연 상황에서 발주자가 보내는 ‘공사 지속 명령’은 단순한 독촉이 아니라, 향후 지체상금·계약해지·손해배상 분쟁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수급인은 명령에 대응하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항목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체크리스트 일곱 가지를 사연과 함께 풀어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공정 지연의 귀책사유입니다. 설계변경, 인허가 지연, 부지 인도 지체처럼 발주자 측 사유라면 공기 연장 청구가 가능하고, 자재 수급 차질·하수급인의 부실처럼 수급인 측 사유라면 지체상금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원인별로 일자·문서·사진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두어야 이후 어떤 협상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민간 표준도급계약서와 공공공사 계약일반조건에는 불가항력, 발주자 귀책, 민원, 행정 지연 등에 따른 공기 연장 절차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사유 발생일로부터 일정 기간 내 서면 신청’을 요구하는데, 이 기간을 놓치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인정받기 어려워집니다. 지속 명령을 받았다면 가장 먼저 이 조항부터 다시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발주자의 명령이 구두인지, 감리자를 통한 지시서인지, 내용증명인지에 따라 효력과 대응 방법이 달라집니다. 특히 설계변경이나 추가 공사를 사실상 강제하는 지시임에도 ‘공사 지속 명령’이라는 외관으로 포장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명령의 실질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추가 공사비 청구 근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판례는 천재지변, 발주자 귀책, 협력업체의 일률적 지연 등 수급인의 지배를 벗어난 사정이 인정되면 지체상금을 면제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는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매일의 공정 회의록, 기상자료, 자재 입고일자, 인부 출역 현황 등이 결국 증거가 됩니다. 명령을 받은 시점부터는 더욱 꼼꼼한 기록이 필요합니다.
지속 명령에 무조건 따르거나 무조건 거부하는 선택은 위험합니다. 강행 시 발생할 적자, 중단 시 발생할 지체상금과 계약해지 위험, 발주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수치로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실무에서는 공정관리 전문가와 변호사가 함께 시뮬레이션하여 의사결정을 돕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흔히 놓치는 부분입니다. 공사를 계속 진행하더라도 “본 공사 지속은 발주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추가 공사비 및 공기 연장 청구권을 유보한다”는 취지의 서면을 반드시 보내야 합니다. 이 한 장의 문서가 훗날 수억 원대 분쟁에서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구두 항의나 내부 보고만으로는 ‘이의 유보’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발주자와의 분쟁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발밑이 무너지는 일이 있습니다. 공기 연장 시 하도급법에 따라 하수급인에게 정당한 추가 공사비를 지급해야 하고, 자재업체와의 납기·단가도 재조정해야 합니다. 이 정리를 미루면 지속 명령에 응한 결과가 오히려 더 큰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화성 물류창고 현장의 대표는 결국 일곱 가지 항목을 하나씩 정리한 뒤, 이의 유보 의사를 명확히 한 서면과 함께 공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발주자 측 설계변경 지시에 따른 추가 공사비 산정 자료를 매주 누적했고, 공정 지연의 절반 이상이 발주자 귀책임을 입증할 자료를 갖추었습니다. 분쟁은 결국 협의 단계에서 정리되었습니다.
공정 지연 국면에서 ‘공사 지속 명령’은 수급인을 가장 불리한 자리로 몰아넣는 카드처럼 보이지만, 위 일곱 가지를 빠짐없이 점검한다면 오히려 정당한 권리를 입증할 기회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한 장의 내용증명, 한 줄의 회의록이 결과를 가르는 영역이 바로 건설공사 분쟁입니다.
민사·이혼 분쟁의 전략 설계와 실전 해결을 돕는 소송전략가 김범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