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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동산 주택 임대차·전세·월세·보증금(전세사기 포함)
부동산 · 주택 임대차·전세·월세·보증금(전세사기 포함) 2026.05.08 조회 321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유예, 어디까지 가능한가

손수혁 변호사
선우 법률사무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지난해 봄, 서울 강서구의 한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던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출근길에 우편함에서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봉투에는 '경매개시결정 정본'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보증금 1억 8,000만 원을 맡긴 집이 어느 날 갑자기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보였습니다. 임대인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같은 건물 다른 호수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잇따랐습니다. 김 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전세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사연은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6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 시행 이후 2024년 말까지 피해자로 결정된 인원만 2만 명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현실이 바로 살고 있는 집의 경매유예 문제입니다.

"경매가 멈추기만 해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습니다. 보증금을 다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시간은 벌어야 하니까요." — 한 피해자의 말

왜 경매유예가 필요한가

경매가 진행되면 임차인은 두 가지 갈림길에 섭니다. 하나는 경매 절차에서 배당을 받고 나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직접 그 집을 낙찰받는 길입니다. 그런데 깡통전세 구조에서는 선순위 근저당이 잡혀 있어 후순위 임차인이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이 보증금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은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충분히 대응 전략을 세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매유예 신청권을 마련했습니다. 핵심은 단순합니다. 절차가 멈춰 있는 동안 피해자 결정을 받고, 우선매수권을 행사할지 LH 매입을 신청할지 선택할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경매유예가 받아들여지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경매유예는 어디까지나 절차를 일시 정지시키는 것일 뿐, 채권 자체를 소멸시키거나 보증금을 보전해 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면, 유예 기간이 끝났을 때 다시 같은 자리에 서게 됩니다.

유예 신청, 누가 어디에 어떻게

경매유예 신청은 크게 두 경로로 진행됩니다. 첫째는 임의경매가 개시된 이후 임차인이 직접 법원에 신청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자와 협의해 절차를 보류시키는 방법입니다. 어느 쪽이든 출발점은 전세사기피해자 결정을 받는 일입니다.

  • 1단계 시·도청에 전세사기피해자 결정 신청 (소요기간 약 30~60일)
  • 2단계 결정문을 첨부해 관할 법원 경매계에 매각기일 연기·유예 신청
  • 3단계 채권금융기관(은행 등)에 경매신청 보류 협조 요청
  • 4단계 유예 기간 중 우선매수권 행사 또는 LH 공공매입 신청 결정

여기서 가장 흔한 함정이 1단계와 2단계 사이의 시차입니다. 피해자 결정에는 평균 한 달 이상이 걸리는데, 그사이 매각기일이 잡혀 버리면 결정문을 들고 가도 이미 기일이 지나 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서 피해자 결정 신청과 동시에 법원에 매각기일 연기 신청서를 먼저 접수하는 것이 실무적 요령입니다. 결정이 아직 나오지 않았더라도, 신청 접수증과 임대차 관계 소명자료만으로도 첫 기일 한두 차례는 연기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유예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모든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채권자가 강하게 반대하거나, 경매 절차가 이미 매각허가결정 단계까지 진행된 경우에는 유예가 거부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임대인이 다수에게 동일한 수법으로 보증금을 가로챈 사안에서, 채권자가 여러 명인 경우 한 채권자가 동의해도 다른 채권자가 별도로 경매를 신청하면 결국 절차는 계속됩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최근에는 단순히 시간을 버는 차원을 넘어, 유예 기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자금 여력이 있다면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LH 공공매입을 통해 보증금 일부를 회수하면서 동일 주택에 임대로 계속 거주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선순위 채권액, 감정가, 본인의 자금 사정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므로 조기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제도의 한계와 앞으로의 방향

현행 경매유예 제도는 분명 진일보한 장치입니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사각지대가 적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결정 요건의 엄격성입니다. 보증금이 일정 금액을 초과하거나, 임대인의 기망 의도를 입증할 자료가 부족하면 결정 자체를 받지 못해 유예 신청 단계에 진입조차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정보 격차입니다. 경매개시결정문을 받고 나서야 절차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 시간이 촉박해, 피해자 결정과 매각기일 연기를 동시에 추진할 여유가 없습니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연락이 끊긴 시점, 혹은 등기부등본에서 가압류·근저당이 새로 잡힌 것을 확인한 시점에 곧바로 대응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실무 체크 포인트

· 경매개시결정 송달 직후 14일 이내 행동 시작

· 임대차계약서·전입신고·확정일자 사본 즉시 확보

· 임대인의 다른 사기 정황(다물건 보유 등) 자료 수집

· 선순위 근저당과 본인 보증금의 우열관계 확인

전세사기는 단순히 보증금을 잃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거점이 흔들리는 사건입니다. 김 씨는 결국 피해자 결정을 받은 뒤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고 LH 매입을 선택했고, 같은 집에서 임대 형태로 계속 거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해자에게 같은 답이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경매유예라는 카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결과를 완전히 바꾼다는 점입니다.

손수혁
손수혁 변호사의 코멘트
선우 법률사무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전세사기 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피해자분들이 경매개시결정문을 받고도 한두 달을 망설이다 매각허가 단계에서 찾아오시는 경우입니다. 유예 신청은 시점이 곧 성패를 가르므로, 임대인 연락이 끊긴 그 순간부터 즉시 움직이시고 가능한 빨리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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