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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한 중견기업의 임원 A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경찰 조사 한 차례를 받고 돌아온 그날 저녁, 회사 인근 카페에서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그의 이름과 직책을 정확히 거명한 짧은 단신 기사를 송고했다는 사실을 동료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같은 내용을 인용한 후속 기사가 다섯 건 넘게 쏟아졌고, 포털 댓글창에는 이미 그를 단정 짓는 표현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A씨가 당시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수사는 아직 시작 단계인데, 어떻게 회사도 가족도 모르던 일이 이렇게 빨리 기사가 됩니까.” 실무에서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점은, 수사 중 언론 공개는 단순한 평판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수사·재판의 흐름과 직장 복귀 가능성까지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A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 분들이 어떤 순서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실제 사건이 흘러갔던 시간 흐름에 따라 단계별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A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을 들어 기사를 캡처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본능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인터넷 기사는 수정·삭제·교체가 빈번하므로, 최초 게재본을 확보해 두지 않으면 이후 정정보도나 손해배상 청구 시 핵심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매체명, 기자명, 게재 시각, URL, 본문, 사진을 모두 캡처하고 PDF로도 저장합니다. 댓글 상위 30~50개와 SNS 인용글도 함께 보존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자료들은 추후 명예훼손 형사고소나 정정·반론보도 청구의 기초자료가 됩니다.
A씨의 기사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단서가 있었습니다. 그날 오전 조사실에서 작성된 진술서의 한 문장이 거의 그대로 인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추측 보도가 아니라 수사기관 내부 또는 인접 관계자로부터 정보가 흘러나왔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황이었습니다.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고, 「수사공보준칙」과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훈령)은 수사 중인 사건의 외부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정보가 어떤 경로로 유출되었는지를 가능한 범위에서 추적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기사 본문 중 어떤 정보가 (1) 본인만 알고 있던 사실, (2) 수사기관만 알 수 있는 사실, (3) 제3자도 알 수 있던 사실인지 구분합니다. 이 분류만으로도 누설 가능 범위가 상당히 좁혀집니다. 동시에 본인 측 사실관계를 시간 순으로 정리해 두어야 다음 단계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가 가장 어려운 지점입니다. A씨는 회사 홍보팀의 권유로 입장문을 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 보면, 수사 초기에 성급히 낸 입장문이 오히려 피의자 진술 번복의 빌미가 되거나, 새로운 쟁점을 만들어내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① 무대응 유지, ② 단문 입장문 발표, ③ 정식 보도자료 배포, ④ 정정·반론보도 청구, ⑤ 명예훼손 고소 중에서 사건의 단계와 혐의 내용에 맞춰 선택합니다. 일반적으로 수사 초기에는 ①~②에 머무르고, 기사 내용이 사실과 명백히 다를 때에 한해 ④로 나아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A씨의 사건에서는 기사 본문 중 두 문장이 객관적 사실과 달랐습니다. 우리는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조정 절차를 선택했습니다. 법원 소송보다 신속하고, 매체와의 합의를 통해 기사 자체를 수정하거나 반론을 본문 상단에 게재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도를 안 날부터 3개월(보도 후 6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합니다. 신청서, 문제된 기사 사본, 사실관계 소명자료를 제출하면 통상 14일 내외로 첫 조정기일이 잡힙니다. 조정이 성립하면 매체는 정정·반론·추후보도 중 합의된 형식으로 기사를 게재합니다.
포털·검색엔진에 대해서는 별도로 임시조치(게시중단) 또는 잊힐 권리에 근거한 검색결과 노출 제한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 기사가 살아 있는 한 효과는 제한적이므로, 원본 매체 대응이 항상 우선입니다.
유출 경로가 수사기관 측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경우,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진정·고발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사인(私人)에 의한 허위사실 유포가 명백하다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고소도 가능합니다. 다만 이 단계는 본 사건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시점과 범위를 변호인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A씨의 경우 본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된 이후, 정정보도와 함께 일부 매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과를 받기까지 약 1년이 걸렸지만, 적어도 첫 24시간 안에 자료를 보존하고 입장문 발표를 자제했던 선택이 이후 모든 대응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수사 중 언론 공개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보도가 시작된 직후의 48시간 동안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결말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