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오늘은 국제 합작투자(Joint Venture)에서 다수 지분 파트너가 소수 지분 파트너를 사실상 축출하려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상의 사례를 통해 단계별로 살펴보겠습니다. 국제거래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분쟁 유형이지만, 준거법과 분쟁해결조항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사안국내 중견 제조사 A사(지분 35%)와 싱가포르 투자펀드 B사(지분 65%)가 베트남 현지에 합작법인 C를 설립
분야전자부품 제조·수출, 합작 4년 차
투자액A사 약 47억 원 (기술·설비 현물출자 포함)
준거법싱가포르법 / SIAC 중재 합의
쟁점B사가 일방적으로 유상증자를 단행, A사 지분을 35%에서 8%로 희석시키며 이사 자리도 박탈
A사 대표는 "B사가 합작 초기에는 우호적이었으나, C법인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시점부터 갑자기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고, A사가 자금 사정상 참여하지 못하자 지분이 8%까지 떨어졌다"고 호소했습니다. 동시에 이사회에서 A사가 지명한 이사 2명 중 1명이 해임되고, 핵심 기술 라이선스 계약도 일방적으로 해지 통보가 이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첫째,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것은 주주간계약(SHA)상 소수주주 보호조항입니다. 통상 국제 합작투자 계약서에는 신주발행에 대한 신주인수권(Pre-emptive Right), 동의권을 요하는 유보사항(Reserved Matters), 그리고 지배구조 변경 시의 특별결의 요건이 포함됩니다.
이 사례에서 A사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다음 두 가지가 확인되었습니다.
1) 유보사항 조항: 발행주식 총수의 20% 이상 신주발행 시 양 당사자 서면 동의 필요
2) 신주인수권: 기존 지분 비율에 따른 인수 우선권 보장. 단, 60일 내 미인수 시 실권
둘째, B사는 이 두 조항을 형식적으로는 우회했습니다. 즉 신주발행을 한 번에 하지 않고 19.9%씩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하여 유보사항 발동을 회피했고, A사에 신주인수권을 통지하긴 했으나 60일 내 거액 납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셋째, 이 지점에서 중요한 법리는 신의성실 원칙과 충실의무입니다. 싱가포르법(영미법계)은 다수주주에게도 소수주주에 대한 일정한 충실의무를 인정하며, 특히 oppression remedy(억압구제) 법리를 통해 형식적으로 적법한 행위라도 실질적으로 소수주주를 부당하게 축출하는 경우 구제를 인정합니다. 단계적 분할증자가 명백히 회피 의도를 가졌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분쟁해결조항이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중재로 합의되어 있는 이상, 한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보전처분(가처분)은 별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둘째, SIAC 중재의 실무적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SIAC 규칙은 중재판정부 구성 전이라도 긴급중재인을 통해 약 2주 내 임시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추가 증자 중단, 기술 라이선스 해지 효력 정지 등을 신청할 수 있어, 시간이 핵심인 축출 분쟁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IBA 증거규칙에 따른 문서제출 절차를 적극 활용해, B사 내부의 의사결정 메모, 이메일, 이사회 회의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단계적 증자가 회피 목적이었다는 정황은 대부분 상대방 내부문서에서 드러납니다.
중재에서 청구할 수 있는 구제는 단순 손해배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주발행 무효 확인, 지분 원상회복(Buy-out 명령), 이사 해임 결의 효력 부인, 라이선스 해지 무효 등 복합적 청구를 함께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첫째, 중재에서 이긴다 해도 판정의 집행이 안 되면 의미가 없습니다. 베트남 현지법인의 자산이 주된 회수 대상이라면 베트남에서의 집행 가능성을, B사 본사 자산을 노린다면 싱가포르 또는 B사 자산 소재국에서의 집행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해야 합니다.
둘째, 뉴욕협약(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 가맹국 간에는 중재판정의 집행이 비교적 원활합니다. 한국, 싱가포르, 베트남 모두 가맹국이므로 절차적 장애는 크지 않습니다.
셋째, 다만 실무에서 자주 보는 함정은 판정 전 자산 은닉입니다. 분쟁이 본격화되면 상대방이 합작법인 자산을 자회사로 이전하거나, 배당 결의를 통해 자금을 유출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중재 신청과 동시에, 자산이 소재한 국가의 법원에 보전처분을 신청하는 병행 전략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외국중재가 진행 중이더라도 자국 내 자산에 대한 보전처분을 인정합니다.
이 사례에서 정리할 수 있는 실무적 시사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합작계약 단계에서 유보사항·신주인수권·반희석화(Anti-dilution) 조항을 정량적이고 회피 불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누적 기준"이라는 한 단어 추가만으로도 단계적 증자 회피를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 분쟁 징후가 보이는 순간 — 보통은 이사회 분위기 변화, 의결권 행사 거부, 갑작스러운 자금조달 안건 — 즉시 증거를 보전하고 긴급중재인 신청을 준비해야 합니다. 통상 축출 시나리오는 3~6개월 안에 완결되기 때문에 대응이 늦으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셋째, 중재·집행·보전을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합니다. 어느 한 단계만 분리해 대응하면 승소하고도 회수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제 합작투자 분쟁은 한국 국내 분쟁과 달리 준거법, 중재지, 자산 소재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층적 전략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계약서 한 줄의 차이가 수십억 원의 회수 가능성을 가르는 일이 실무에서 빈번히 발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