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줄이고 결과로 입증합니다.
평생 모은 돈으로 건물을 짓다가 시공사가 부도를 맞으면 정말 막막하실 겁니다. 공사는 중단됐는데 자재대금 미지급 통보서가 날아오고, 하도급업체 인부들은 현장에 자물쇠를 채워두고 떠나버린 상황. 이런 시공사 부도 상황에서 공사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실제 상담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례] 경기 화성에서 자가 사옥을 짓던 건축주 A씨(54세, 제조업체 대표)는 공정률 62% 시점에 시공사 B건설의 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도급계약 총액은 38억 원, 그동안 기성고에 따라 24억 원을 지급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철근·레미콘 업체들이 "우리도 B건설에서 1억 8천만 원을 못 받았다"며 유치권 행사를 시작했고, 하도급업체 직원들은 임금체불을 호소하며 발길을 끊었습니다. A씨는 "이미 들어간 24억이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해왔습니다.
A씨처럼 공정률이 절반을 넘긴 상태에서 시공사가 부도나는 경우, 단순히 새 시공사를 구해 이어 짓는 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이 됩니다. 법적으로 정리해야 할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것은 B건설과의 도급계약을 어떻게 정리할지입니다. 많은 건축주분들이 "부도났으니 자동으로 계약이 끝난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도급계약은 시공사가 부도났다고 자동 해제되지 않습니다. 건축주가 명시적으로 해제 의사표시를 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민법 제673조에 따르면 도급인(건축주)은 수급인(시공사)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공사의 이행지체나 이행불능을 이유로 한 법정해제도 가능합니다. 시공사가 부도로 공사 속행이 불가능해진 경우는 통상 이행불능에 해당하므로, 손해배상 없이도 해제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제 시 반드시 확인할 사항
- 내용증명으로 해제 의사를 명확히 통보 (이메일·문자만으로는 입증 어려움)
- 해제 시점까지의 기성고 정산을 별도로 진행 (이미 지급한 금액 vs 실제 완성된 공정의 가치)
- 시공사가 법인회생 신청 중이라면 회생법원의 절차도 함께 고려
실무에서 자주 접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계약 해제 통보 없이 그냥 새 시공사를 들여 공사를 이어가는 경우인데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기존 시공사 측 채권자(또는 회생관재인)가 "우리 시공사 자재·인력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사를 무단으로 가져갔다"며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해올 수 있습니다. 반드시 계약관계를 깔끔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A씨 사례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철근·레미콘 업체들이 자재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유치권을 주장하며 현장을 점거한 상황. 이때 건축주가 가장 먼저 검토할 것은 하도급법상 직접지급 청구권입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는 원사업자(시공사)가 지급정지·파산 등으로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경우, 발주자(건축주)가 수급사업자(하도급업체)에게 직접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건축주의 시공사에 대한 도급대금 채무는 그 범위에서 소멸합니다.
직접지급 활용의 실익
- 건축주가 시공사에게 줄 잔여 도급대금 한도 내에서만 지급하므로 추가 지출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 하도급업체의 유치권 주장도 변제로 인해 자연스럽게 소멸
- 현장 점거를 풀고 공사 재개의 발판 마련 가능
다만 유치권 주장이 모두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자재만 납품하고 공사에 직접 투입되지 않은 단순 자재상은 유치권 성립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일부 업체는 채권액을 부풀려 주장하기도 합니다. 채권액 진위와 유치권 성립요건을 하나씩 따져본 뒤, 정당한 부분만 직접지급으로 해결하고 나머지는 법적 대응(유치권 부존재 확인 소송, 점유이전금지 가처분 등)을 병행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1·2번 쟁점이 정리되면 본격적으로 공사 재개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 시공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짓던 건물을 이어받는 "승계 공사"는 책임 범위가 모호해서 대부분의 건설사가 꺼리기 때문입니다.
A씨는 결국 위 과정을 거쳐 약 5개월 만에 공사를 재개했고, 직접지급으로 처리한 하도급대금 1억 2천만 원은 잔여 도급대금에서 공제되어 추가 부담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상담을 오셨을 때 "24억이 다 날아가는 줄 알았다"며 한숨짓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시공사 부도는 분명 큰 위기이지만,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 충분히 수습 가능한 사안입니다. 다만 초기 대응에서 한 번이라도 어긋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으니, 부도 소식을 들으신 즉시 현장 보존과 계약관계 정리를 동시에 진행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