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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운영 과정에서 의장이 특정 안건의 상정을 거부하거나, 표결 자체를 보류하는 상황을 겪고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된 회사에서는 의장의 회의 진행 권한이 사실상 거부권처럼 행사되면서, 소수 이사들이 안건을 올릴 기회조차 잃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실제 자문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사회 의장 거부권 한계에 관한 가상의 사례를 통해, 의장의 권한이 어디까지 인정되는지, 또 그 권한이 남용되었을 때 어떻게 다툴 수 있는지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회사: 경기도 성남시에 본사를 둔 비상장 IT 솔루션 회사 (자본금 18억 원, 이사 7인)
등장인물: A씨(54세, 창업주이자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 B씨(47세, 사외이사, 2대 주주측 추천 인사)
쟁점: B씨가 다른 이사 2인의 동의를 받아 "대표이사 해임의 건"과 "제3자 배정 신주발행 철회의 건"을 이사회 안건으로 요청하였으나, 의장인 A씨가 "안건 적합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 연속 상정을 거부한 상황입니다.
먼저 가장 본질적인 질문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이사회 의장에게 의안 상정을 거부할 권한이 과연 있느냐는 점입니다.
상법은 이사회 의장의 권한에 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통상 정관이나 이사회 규정에서 "의장은 이사회를 소집하고 의사를 진행한다"고 정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의사진행권은 회의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절차적 권한이지, 의안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실체적 권한은 아닙니다.
즉 A씨가 "안건 적합성 검토"를 이유로 상정 자체를 거부한 것은, 외형상 의사진행권 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이사들의 안건 제출권을 봉쇄한 것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무 포인트
이사 1인 또는 일부 이사가 적법하게 안건을 제출한 경우, 의장은 이를 부의(附議)하여 이사 전원의 의결에 부쳐야 합니다. 안건의 채택 여부 자체를 의장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입니다.
A씨처럼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하는 경우, 본인의 해임 안건이 올라왔을 때 그 회의를 본인이 주재할 수 있는지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무에서 보면, 본인의 해임이나 책임추궁이 의제가 된 이사 본인은 그 안건과 관련하여 특별이해관계인(상법 제391조 제3항, 제368조 제3항)에 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특별이해관계인은 해당 안건의 의결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이때 회의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의장도 다른 이사에게 사회권을 넘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A씨가 본인 해임 안건의 상정을 "의장 권한"으로 거부하는 것은, 본인이 가장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안에서 절차를 좌우하는 셈이 되어 신의칙에 반할 소지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다른 이사들은 정관과 이사회 규정을 근거로, 의장 직무대행 또는 임시의장 선출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B씨처럼 의장의 거부가 반복되어 안건을 다룰 기회조차 얻지 못할 때, 손 놓고 기다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상법은 이런 상황에 대비한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이사의 이사회 소집청구권 및 직접 소집권(상법 제390조)입니다. 각 이사는 의장(또는 소집권자)에게 회의의 목적사항을 적어 이사회 소집을 청구할 수 있고, 의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소집을 거절하면 청구한 이사가 직접 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신주발행과 같이 회복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신주발행유지청구(상법 제424조)나 가처분을 통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사례의 "제3자 배정 신주발행"이 이미 진행 중이라면, 이사회의 적법한 결의가 있었는지, 경영권 방어 목적의 부당한 발행은 아닌지 다툴 여지가 충분합니다.
셋째, 회의록과 통지 내역, 거부 사유 통지문 등을 꼼꼼히 보존해야 합니다. 의장의 거부 사유가 일관성이 없거나 자의적이라는 점이 증거로 남으면, 향후 책임추궁이나 결의 효력 다툼에서 유리한 자료가 됩니다.
증거 확보 체크리스트
1. 안건 상정 요청 공문(이메일, 내용증명 포함) 사본
2. 의장의 거부 회신 또는 보류 통지문
3. 직전 3~4회분의 이사회 회의록
4. 정관 및 이사회 규정 최신본
5. 이해관계 충돌을 보여주는 자료(대표이사 본인 관련 거래 등)
이사회 의장의 권한은 회의를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기 위한 절차적 도구이지, 다른 이사들의 정당한 의사 표현을 막는 무기가 아닙니다. 사례에서 A씨가 행사한 "거부권"이 어디까지 인정될지는 결국 정관·이사회 규정의 구체적 문언, 안건의 성격, 의장의 이해관계 정도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됩니다.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회사에서는 한 번의 이사회 운영이 회사의 향방을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장의 권한 행사가 과한 것은 아닌지, 또 반대로 의장으로서 정당하게 회의를 진행한 것을 두고 부당하다는 공격을 받는 것은 아닌지, 양쪽 모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영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