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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견 IT 기업의 M&A 클로징(거래 종결) 직전, 수개월간 공들여 진행한 거래가 한순간에 무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양측 모두 계약서에 서명했고, 인수대금도 준비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계약서에 명시된 클로징 선행조건(Closing Conditions, 거래 종결 전에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 기한 내에 충족되지 못한 데 있었습니다.
M&A 실무에서 클로징 선행조건은 계약 체결과 거래 종결 사이의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 안전장치가 오히려 거래를 좌초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클로징 선행조건의 법적 쟁점과 실무적 대응 방안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사례 개요]
서울 소재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씨(52세)는 자신의 지분 100%를 대전의 중견 그룹 계열사 B사에 350억 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주식매매계약(SPA)이 체결되었고, 클로징 기한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90일로 설정되었습니다.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클로징 선행조건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신고 수리
2) 대상회사의 핵심 거래처 3곳과의 계약 유지에 대한 동의서(Change of Control Consent) 확보
3) 클로징일까지 대상회사에 중대한 부정적 변경(MAC, Material Adverse Change)이 없을 것
그런데 클로징 기한 2주 전, 핵심 거래처 중 한 곳인 C사가 동의서 제공을 거부했고, 같은 시기에 대상회사의 주요 기술 인력 5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B사는 선행조건 미충족을 이유로 클로징을 거부하고, 나아가 계약 해제를 통보했습니다.
M&A 계약에서 Change of Control Consent(지배권 변경 동의)는 빈번하게 클로징 선행조건으로 설정됩니다. 대상회사의 핵심 계약이 인수 후에도 유지되는지는 기업 가치의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에서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부분은 동의서 확보 의무가 누구에게, 어떤 수준으로 부과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계약서상 매도인(A씨)에게 '최선의 노력(best efforts)'으로 동의서를 확보할 의무가 있었는지, 아니면 '합리적 노력(reasonable efforts)'에 그쳤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실무상 구분
- Best efforts: 사실상 결과 보장에 가까운 의무.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 Reasonable efforts: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의 노력. 과도한 비용이나 불합리한 양보까지 요구되지는 않습니다.
- Commercially reasonable efforts: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의 노력으로, 실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됩니다.
A씨가 C사에 대해 수차례 방문, 조건 협의 등 합리적 노력을 다했음에도 C사가 자체 전략적 판단으로 동의를 거부한 것이라면, A씨의 의무 위반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계약서에 '해당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매수인이 클로징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면, B사의 클로징 거부 자체는 계약에 따른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노력 의무의 위반 여부와 선행조건 미충족 시 효과를 분리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매도인이 노력 의무를 다했더라도, 선행조건이 객관적으로 미충족이면 매수인은 클로징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매도인의 의무 위반이 없었다면 위약금이나 손해배상 청구의 근거는 약해집니다.
B사가 클로징 거부의 또 다른 근거로 제시한 것이 MAC(중대한 부정적 변경) 조항입니다. MAC 조항은 계약 체결일과 클로징일 사이에 대상회사에 중대한 부정적 변경이 발생하면, 매수인이 거래를 진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보호 장치입니다.
문제는 '중대한 부정적 변경'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핵심 기술 인력 5명의 집단 사직이 MAC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MAC의 해당 여부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이 사례에서 핵심 기술 인력의 사직이 M&A 소식이 알려진 직후 발생한 것이라면, MAC 조항의 carve-out에 해당하여 B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A씨의 경영 실책이나 기존 인사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MAC 해당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MAC 조항 실무 포인트
국내 M&A 실무에서 MAC 조항의 발동이 실제로 인정되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중대성'에 대한 입증 기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수인 측에서는 MAC 조항만 믿기보다, 구체적인 선행조건(핵심 인력 유지 조건, 재무 지표 기준 등)을 별도로 설정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안전합니다.
B사는 클로징 기한(90일) 도과를 이유로 계약 해제를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선행조건 미충족의 원인이 매수인 측에도 있으므로 기한을 연장하여 조건 충족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쟁점에서는 크게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첫째, 계약서에 클로징 기한 자동 연장 조항(Outside Date Extension)이 존재하는지 여부입니다. 당사자 간 합의 없이도 일정 조건 하에서 기한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규정이 있다면, 기한 도과만으로 바로 해제권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둘째, 해제권 행사의 제한 조건입니다. 많은 계약서에는 '선행조건 미충족에 기여한 당사자는 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B사가 거래처 동의서 확보 과정에서 비협조적이었거나, 인력 이탈을 유발하는 행위를 했다면, 해제권 행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셋째, 해약금(Break-up Fee) 조항의 존재 여부입니다. 거래가 무산될 경우 일정 금액을 상대방에게 지급하도록 약정한 경우, 해제의 정당성과 별개로 금전적 정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사례에서 350억 원 규모의 거래라면, 통상적으로 거래대금의 1~3% 수준(3.5억~10.5억 원)의 해약금이 설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약 해제와 손해배상의 관계
클로징 기한 도과에 따른 계약 해제가 정당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면 손해배상 청구는 별도로 가능합니다. 실무에서는 해약금 조항이 손해배상의 예정인지, 아니면 위약벌인지에 따라 추가 손해배상 청구 가능 여부가 달라지므로,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례는 클로징 선행조건의 설계와 관리가 M&A 거래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실무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하여 계약을 구성해야 합니다.
M&A 거래에서 계약 체결은 절반에 불과합니다. 클로징까지의 과정에서 선행조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충족이 어려운 조건에 대해서는 사전에 대안을 마련해 두는 것이 성공적인 거래 종결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