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진단과 분석, 결과로 증명합니다.
수출입 거래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계약서에 적힌 인코텀즈(Incoterms, 국제상업회의소가 정한 무역거래 조건) 세 글자가 실제 분쟁에서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겪고 나서야 실감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화물이 운송 중 파손되었을 때 그 손해를 누가 떠안느냐, 즉 위험이전 시점을 둘러싼 실제 같은 사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D사(대표 정모씨, 52세)는 베트남 하이퐁의 바이어 M사에 정밀 금형 부품 3억 2천만 원어치를 수출했습니다. 계약서에는 조건이 FOB 부산항(Incoterms 2020)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선박이 크게 흔들렸고, 도착지에서 개봉해 보니 정밀 부품 상당수가 충격으로 변형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바이어 M사는 “물건이 망가졌으니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결제를 거부했고, D사는 이미 물건은 배에 실었는데 대금까지 못 받게 되자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런 상황, 생각보다 자주 벌어집니다. 물건은 내 손을 떠났고 사고는 바다 위에서 났는데, 대체 손해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FOB(Free On Board, 본선인도조건)의 핵심은 물품이 지정 선적항에서 선박에 적재되는 순간 위험이 매도인에서 매수인으로 넘어간다는 점입니다. Incoterms 2020 기준으로 FOB에서의 위험이전 시점은 ‘물품이 본선에 적재된 때’입니다.
즉, 이 사건에서는 부품이 부산항에서 컨테이너선에 실린 순간 위험은 이미 바이어 M사에게 이전되었습니다. 항해 중 태풍으로 인한 파손은 위험이전 이후에 발생한 사고이므로, 원칙적으로 그 손해는 매수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M사가 “물건이 망가졌으니 대금을 못 준다”고 하는 주장은 인코텀즈 법리상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물건이 배에 실린 이후의 위험은 M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실무에서는 아래 두 가지를 반드시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위험이 넘어갔다고 주장하려면, 물품이 선박에 실제로 적재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매도인이 증명해야 합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이 입증 부분에서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핵심 증거는 선하증권(B/L, 화물을 선박에 실었음을 증명하는 서류)입니다. 특히 ‘선적선하증권(Shipped B/L)’은 물품이 실제로 본선에 적재되었음을 나타내므로 위험이전 사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반면 ‘수취선하증권(Received B/L)’은 운송인이 화물을 받았다는 의미일 뿐, 아직 배에 실렸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D사의 경우 다행히 선적선하증권과 부산항 터미널의 적재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류들이 “태풍 사고 이전에 이미 적재가 끝났고, 따라서 위험은 M사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근거가 됩니다.
법리상 유리하다는 것과 실제로 대금을 받아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상대가 해외에 있는 만큼,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절차를 차분히 밟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D사는 선적선하증권을 근거로 위험이전 사실을 명확히 밝힌 뒤, M사의 적하보험으로 손해가 처리되도록 협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계약 조건의 정확한 해석과 탄탄한 증거가 문제 해결의 두 축이었던 셈입니다.
인코텀즈 조건 한 줄이 수억 원의 손해 귀속을 좌우합니다. 계약서에 ‘FOB’, ‘CIF’, ‘DAP’ 같은 조건을 적을 때는 그것이 곧 위험과 비용을 나누는 경계선이라는 점을 반드시 인식하셔야 합니다.
또한 위험이전을 주장하려면 그 시점을 입증할 서류를 평소에 꼼꼼히 챙겨 두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선하증권, 적재 기록, 검수 서류 하나하나가 분쟁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됩니다. 물건을 배에 실었다는 사실만 믿고 방심하기보다,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느냐’까지 점검해 두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