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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계약 · 국제거래·국제중재·판결집행 2026.09.05 조회 6

국제 물품매매 대금 미지급, CISG로 풀어보는 실전 사례분석

도일석 변호사
법률사무소 도준 · 경기도 수원시

오늘은 국제 물품매매 대금 분쟁의 실제 처리 과정을 하나의 가상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거래와 달리 국제거래는 어느 나라 법이 적용되는지, 분쟁을 어디에서 해결할지부터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회수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A사(대표 김모 씨, 52세)는 독일의 유통업체 B사에 부품을 수출하기로 계약했습니다. 계약 금액은 32만 유로(약 4억 6천만 원), 대금은 물품 인도 후 60일 이내 지급 조건이었습니다. A사는 예정대로 물품을 선적했으나, B사는 "일부 제품의 품질에 하자가 있어 재판매가 불가능하다"며 대금 전액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이 사례에는 국제거래 대금 분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쟁점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씩 나누어 분석해 보겠습니다.

첫째, 어느 나라 법이 적용되는가

국제 물품매매에서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준거법(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지)입니다. 계약서에 준거법 조항이 있다면 그것이 우선하지만, A사와 B사는 이 부분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실무에서 가장 먼저 검토하는 것이 CISG(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 일명 비엔나협약)입니다. 한국과 독일은 모두 CISG 가입국이며, 양 당사자의 영업소가 서로 다른 협약 가입국에 있으면 별도 배제 합의가 없는 한 CISG가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즉, 계약서에 준거법을 안 썼더라도 이 사안에는 CISG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A사에게 유리한 지점입니다. CISG는 매수인의 대금지급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ISG 적용 요건 정리

1. 당사자 영업소가 서로 다른 국가에 있을 것

2. 두 국가 모두 CISG 가입국일 것(또는 국제사법상 가입국 법이 준거법일 것)

3. 계약으로 CISG 적용을 배제하지 않았을 것

둘째, 품질 하자 주장은 대금 거부 사유가 되는가

B사는 품질 하자를 이유로 대금 전액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CISG상 매수인이 하자를 이유로 대응하려면 지켜야 할 절차가 있습니다.

첫째, 합리적인 기간 내에 물품을 검사해야 합니다. 둘째, 하자를 발견했거나 발견할 수 있었던 때로부터 합리적인 기간 내에 매도인에게 하자를 통지(부적합 통지)해야 합니다. 이 통지를 게을리하면, 매수인은 원칙적으로 하자를 주장할 권리를 잃습니다.

또한 하자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대금 전액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CISG는 하자의 정도에 따라 대응 수단을 구분합니다. 하자가 본질적 계약위반(계약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야 계약 해제가 가능하며, 그에 미치지 못하면 대금 감액이나 손해배상 청구에 그칠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일부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주장은, 전체 대금 지급을 거부할 근거로는 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사로서는 B사가 언제 검사했고 언제 통지했는지를 다투는 것이 핵심 방어 전략이 됩니다.

셋째, 분쟁을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하는가

준거법이 CISG라 해도, 실제로 다툴 재판관할 또는 중재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계약서에 중재조항이 없다면 A사는 독일 법원에 소를 제기하거나 국제 관할 규칙을 따져야 하는데, 외국 법원 소송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큽니다.

반면 계약서에 국제중재 조항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국제중재는 뉴욕협약(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에 따라 170개국 이상에서 중재판정의 집행이 보장되기 때문에, 해외 자산에 대한 판결집행이 외국 법원 판결보다 수월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무에서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 중재기관, 중재지, 사용 언어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분쟁 발생 후의 회수 가능성을 좌우합니다. A사가 사후에 가장 아쉬워한 부분도 바로 이 중재조항의 부재였습니다.

실무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국제 물품매매 계약서에는 준거법·분쟁해결 조항(중재지·기관·언어)을 반드시 명시해야 합니다. 둘째, 대금 미지급 시 매수인의 하자 주장에 대해서는 검사·통지 시점을 즉시 확인해야 합니다. 셋째, 회수 실효성을 높이려면 상대방 자산 소재지와 뉴욕협약 가입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국제거래 대금 분쟁은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가"보다 "실제로 받아낼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계약 단계의 설계가 결국 결과를 결정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도일석
도일석 변호사의 코멘트
법률사무소 도준 · 경기도 수원시
국제거래 사건을 다루면서 느낀 점은, 승패의 절반이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이미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준거법과 중재조항이 빠진 계약은 대금 회수 단계에서 큰 비용을 치르게 되므로, 분쟁 발생 전이라도 계약서 검토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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