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
벤처 투자 계약에서 선행조건(Conditions Precedent)은 투자금 납입 전 피투자회사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전제 조건을 의미합니다.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투자 실행을 거부할 수 있는데, 실제 상담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 미이행이면 투자 거부가 정당한가'를 두고 분쟁이 자주 발생합니다. 오늘은 가상의 사례를 통해 선행조건 미이행 시 투자 거부의 법적 쟁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례
경기 성남시 소재 SaaS 스타트업 A사(대표 김모 씨, 38세)는 벤처캐피탈 B사로부터 시리즈A 투자 30억 원을 유치하기로 하고 투자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서에는 납입일 전까지 (1) 핵심 개발자 2인의 스톡옵션 부여 및 경업금지 약정 체결, (2) 특허 3건의 권리 이전 완료, (3) 외부 회계법인의 재무 실사 통과를 선행조건으로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납입 예정일까지 핵심 개발자 1인이 경업금지 약정 체결을 거부했고, 특허 중 1건은 선출원 분쟁으로 권리 이전이 지연되었습니다. B사는 "선행조건 미이행"을 이유로 투자 실행을 거부했고, A사는 "경미한 하자일 뿐"이라며 투자금 납입을 요구했습니다.
투자계약상 선행조건은 정지조건(條件이 성취되어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투자자의 투자금 납입 의무가 발생합니다. 계약서에 '아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될 것을 조건으로 투자자는 납입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조건 미성취 시 투자자에게 납입 의무가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A사의 경업금지 약정 미체결, 특허 이전 지연은 명시된 선행조건의 불이행에 해당하며, 원칙적으로 B사는 투자 실행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50조(조건 성취의 의제)가 적용되려면 투자자가 신의성실에 반해 조건 성취를 방해한 사정이 있어야 하는데, 본 사례에서는 그러한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핵심 정리
선행조건이 '정지조건'으로 규정된 경우, 조건 미성취 시 투자자의 납입 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는 계약 위반이 아니라 조건 불성취의 문제입니다.
A사는 '경미한 하자'를 주장했습니다. 실무상 선행조건 미이행이라도 그 정도가 투자 판단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미한 사항이라면, 투자자의 거부가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 위반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계약서 문언과 조건의 성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이 평가됩니다.
계약서에 '선행조건은 투자자의 재량으로 일부 포기(waiver)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면, 투자자는 중대한 조건만 유지하고 경미한 조건을 포기할 선택권을 갖습니다. 다만 이는 투자자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므로, 투자자가 전체 거부를 선택해도 위법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선행조건 불성취로 투자가 실행되지 않은 경우, 원칙적으로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조건 불성취는 계약 위반(채무불이행)과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음 사항은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실무상 검토 포인트
첫째, 계약서에 위약금 또는 비용분담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실사 비용, 법률 자문 비용 등의 부담 주체가 명시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A사가 선행조건을 이행할 수 있었음에도 고의로 해태한 경우에는, B사가 계약상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위반을 근거로 손해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 사례에서 A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은, 미이행된 선행조건을 신속히 보완한 뒤 투자 실행 재협의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경업금지 약정은 개발자와 재협상하고, 특허 분쟁은 라이선스 확보 등 대안을 마련해 B사의 투자 판단 근거를 보완하는 방식입니다.
정리하면, 투자 선행조건 미이행 시 투자자의 거부는 계약 문언상 정지조건 구조에서는 원칙적으로 정당하며, 피투자회사로서는 조건의 중대성을 다투기보다 신속한 보완을 통해 거래를 복구하는 전략이 현실적입니다. 다만 각 조항의 해석과 포기 조항 유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계약서 전문의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형사전문, 민사전문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