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은 전체 산업 중 사망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분야입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매년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면 늘 같은 질문이 나옵니다. 발주자도 책임을 지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발주자라고 해서 무조건 책임을 면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책임 여부를 따지기 전에 용어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세 가지를 뒤섞어 쓰는데, 법적 책임은 여기서 갈립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발주자는 원칙적으로 안전관리 책임의 주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라는 단서가 붙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2020년 전면 개정되면서 발주자에게도 일정한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건설공사발주자의 안전보건대장 작성·이행 의무(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입니다.
총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자는 공사 단계별로 안전보건대장(계획·설계·공사 단계의 안전관리 문서)을 작성하고, 수급인이 이를 이행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소홀히 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발주자도 책임 선상에 오릅니다.
발주자가 책임질 수 있는 대표 상황
· 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작성한 경우
· 무리한 공기(공사기간) 단축을 요구해 안전조치가 생략되도록 유발한 경우
· 명목상 발주자이나 실질적으로 공사를 지휘·감독한 경우
특히 세 번째가 실무에서 자주 문제됩니다. 서류상 발주자일 뿐이라며 발을 빼려 해도, 실제로 현장 공정을 지시하고 인력을 통제했다면 법원은 도급인 또는 사실상 사용자로 봅니다. 명의가 아니라 실질이 기준입니다.
2022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 법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웁니다.
여기서 '발주자냐 도급인이냐'라는 형식적 구분보다 중요한 것이 '누가 실질적으로 그 현장을 지배·관리했는가'입니다. 상담 현장에서 보면, 발주자라는 이유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발주자가 시공 전반을 실질적으로 통제했다면 경영책임자로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사망 1명 이상 등)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법인에는 별도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결코 가벼운 책임이 아닙니다.
형사책임과 민사책임은 트랙이 다릅니다. 형사에서 무혐의가 나와도 민사 손해배상은 별도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발주자가 안전관리에 관한 지시권을 보유하고 있었거나, 사고의 위험을 알면서도 방치했다면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여러 사람이 함께 가해한 책임) 또는 사용자책임(민법 제756조)이 성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피해 근로자나 유족이 시공사와 발주자를 함께 피고로 걸어오는 경우가 실무에서 적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발주자라는 지위만으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세 가지를 소홀히 하면 책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총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이라면 안전보건대장을 실질적으로 작성하고 이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십시오. 둘째, 공기 단축이나 비용 절감을 명목으로 안전조치를 생략하게 만드는 요구는 피하십시오. 셋째, 현장에 대한 지휘·감독 관계를 명확히 하고, 계약서에 안전관리 책임 소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십시오.
건설 현장 안전사고는 발생 이후 책임 공방이 길고 복잡합니다. 사고 전 예방 단계에서의 문서 관리와 책임 구조 정비가 발주자 책임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