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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대표 한 분이 다급하게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독일 바이어와 12만 유로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물품을 선적했는데, 도착한 부품 중 상당수에 규격 불량이 있다며 바이어가 전량 반품과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대표님은 바이어가 대금 지급을 미루기 위해 트집을 잡는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수출 계약 클레임은 어느 한쪽만의 잘못으로 단순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국제거래는 국내 거래와 달리 준거법(어느 나라 법을 적용할지), 분쟁 해결 방법, 물품 검사 시점 등이 얽혀 있어 절차 자체가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수출기업 대표님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어려움을 겪으십니다. 오늘은 클레임을 받았을 때, 혹은 반대로 청구해야 할 때 어떤 순서로 대응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클레임 서한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감정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와 통지 내용을 냉정하게 대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확인해야 할 부분은 바이어가 물품 하자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통지했는가입니다.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 국제 상거래에 널리 적용되는 협약)이 준거법인 경우, 매수인은 물품을 검사할 수 있는 합리적 기간 내에 검사하고, 하자를 발견한 후 합리적 기간 내에 하자의 성질을 특정하여 통지해야 합니다. 이 통지를 게을리하면 매수인은 하자를 주장할 권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계약서상 검사·통지 조항, 준거법, 하자 통지 시점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를 한자리에 모읍니다.
앞선 부품 수출 사례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증거였습니다. 대표님은 선적 전 전 물량에 대해 자체 품질검사를 진행하고 사진과 검사 성적서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자료가 있었기에 바이어의 하자 주장 중 상당 부분이 운송·보관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입장이라면 손해액을 구체적으로 산정해야 합니다. 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손해, 반품·재선적 비용, 대체 거래로 인한 차액, 그리고 계약 위반이 없었다면 얻었을 이익(일실이익)까지 항목별로 정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막연히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만으로는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실무에서 보면, 클레임 초기에 제3자 검정기관(SGS 등 공인 검사기관)의 검사보고서를 확보해 두었는지 여부가 이후 협상력과 소송·중재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하자의 원인과 발생 시점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손해 항목을 금액으로 구체화합니다.
국제거래 분쟁의 상당수는 소송이나 중재까지 가지 않고 협상으로 마무리됩니다. 소송·중재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들고, 무엇보다 거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사례의 대표님도 최종적으로는 불량으로 확인된 일부 물량에 대해서만 대금을 감액하고, 나머지는 정상 결제받는 방식으로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협상 단계에서는 합의서 문언을 정확히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액 범위, 향후 추가 클레임 포기 여부, 지급 기한과 방법 등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합의 이후 또 다른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측 주장의 근거를 교환하며 합의점을 찾고, 확정된 내용을 서면으로 명확히 남깁니다.
협상이 결렬되면 계약서에 정해진 분쟁 해결 방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합니다. 국제거래 계약서에는 대부분 중재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대한상사중재원(KCAB)이나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 등 특정 기관의 중재로 해결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법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진행해야 합니다.
중재는 단심제여서 결과가 비교적 빠르게 확정되고, 뒤에서 설명할 외국에서의 집행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계약서에 중재 조항이 없다면 관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앞서 정리한 증거와 손해액 산정 자료가 핵심 무기가 됩니다.
계약상 분쟁 해결 조항을 확인하여 중재 또는 소송을 제기하고, 서면·증거로 청구를 입증합니다.
많은 대표님들이 간과하는 마지막 단계가 집행입니다. 승소 판결이나 중재판정을 받아도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지급하지 않으면, 상대방 재산이 있는 나라에서 강제집행을 해야 실제 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중재의 장점이 두드러집니다.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뉴욕협약)에 가입한 나라가 170여 개국에 이르러, 중재판정은 상대방 국가에서 비교적 폭넓게 집행이 인정됩니다. 반면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은 상대방 국가가 우리 판결을 승인해 주는지 여부에 따라 집행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부터 분쟁 해결 방법을 신중하게 정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 재산 소재지 국가에서 판정·판결의 승인 및 집행 절차를 밟아 실제 채권을 회수합니다.
지금까지의 다섯 단계를 돌아보면, 결국 클레임 처리의 성패는 사후 대응만이 아니라 계약을 체결할 때 이미 상당 부분 결정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품 검사 시점과 하자 통지 기한, 준거법, 분쟁 해결 방법, 손해배상 범위를 계약서에 얼마나 명확히 규정해 두었는가가 이후 협상력을 좌우합니다.
수출 클레임을 받으면 당황해서 성급히 대응하거나 반대로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가지 모두 위험합니다. 통지 기한 도과나 증거 미확보로 정당한 권리를 잃는 일이 실제로 적지 않습니다. 절차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